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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 16절. 자발적으로

정지훈 2016.11.30 08:03 조회 수 : 118

나눔날짜 2016-11-30 

창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곧 멸망한다는 것을 머리는 인식 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롯을 봅니다.

죄가 주는 유혹은 참으로 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더 이상 죄지을 힘이 없어야 죄를 못 짓습니다.

이 죄가 내 삶을 파괴하고 나아가 내 가정과 공동체를 파괴함을 알아도 멈추지 않는 것이 인생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일하십니다. 롯과 그 아내와 두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낸것입니다.

히브리말 앗짜 라는 동사는 손을 잡고 이쁘게 인도하는게 아닙니다.

손을 낚아채어 끌어내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질질 끌려 나오는 형상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비 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늘 말씀가운데 자비를 베푸십니다.

아브라함도 그 자비를 입었습니다. 롯도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두 사람 똑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걸어간 사람이고, 롯은 깨닫고도 자발적으로 안 갑니다.

그래서 질질 끌려간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헤브론에 거하며 하나님 말씀을 기준삼아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있습니까? 자발적으로 따라 나서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처럼 코가 꿰어져야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생은 아닙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걸어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 평생 코가 꿰어서 걸어갑니다. 신앙 생활이 얼마나 피곤합니까?

 

이 한해가 가기 전에 결단하지 않겠습니까? 자발적으로 한걸음 움직여 가는 아름다운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