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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21-05-17 

막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주일 들으신 말씀에 나를 잡아 드리는 예배의 삶을 이어 가고 계시는지요! 삶에 예배는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가 나무로 다가 가십니다. 그리고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 무화가 나무를 저주하심으로 나무는 말라 죽습니다. 

 

무화가 나무는 이스라엘, 유대교를 상징합니다. 주일 설교에서 전했듯이 막11장은 잎만 무성한 무화가가 유대교의 상징인 성전에 비유되고 있음을 살폈습니다.   

 

성전에서 종교의식 종교행사는 웅장하고 거룩하게 진행됩니다. 주께서 성전을 살피실 때 정작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는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인 우리도 이 무화가 나무 비유에 자유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일방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 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같은 열매를 바라 십니다. 

 

성전 중심인 이스라엘 사람들, 교회 중심인 기독교인들 우리 삶속에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열매가 맺어져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번제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면 번제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가라 앉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사 자체에 속죄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수반된 제사를 하나님은 받기 원하십니다.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되는 것이 로마서가 말하는 성화입니다.

상한 심령이 무엇입니까?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겁니다. 동시에 소망 없는 내게 얼마나 큰 은혜를 부어 주셨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의 대명사가 나라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망과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 합니다. 

 

세상 피해는 내가 다보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해자였음을 드디어 아는 겁니다.

내 죄로 누군가 고통 속에 거함을, 내 죄로 하나님께 아픔이 되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바로 볼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그분의 은혜를 절감합니다.

그분의 은혜를 절감 할 때 비로소 용서와 덮음을 실천하는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는 자는 위로를 얻습니다.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는 자는 고침을 받습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 그토록 바라시는 열매가 맺어지는 복 누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