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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 3절

정지훈 2016.10.01 08:13 조회 수 : 39

나눔날짜 2016-09-28 

창19: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이 천사 일행을 대접 한것과 마찬 가지로 롯도 천사 일행을 대접합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양의 고운 가루로 만든 빵,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고기, 요구르트와 우유로 그리고 직접 곁에서서 시중듭니다.

 

그런데 롯은 무엇으로 식탁을 차리고 있습니까? 무교병입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밀가루 빵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피자에 내용물은 없고 피자판만 있는 형국입니다.

손님에게는 결코 내어 줄 수 없는 음식입니다. 그것 먹고 내일은 일찍 일어나 갈길 가라고 합니다.

손님을 섬겨야 하니까 모셔는 들였지만 천사들을 위해 정성은 쏟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무교병을 드렸다면 천사 일행이 그 중심을 보고 고마워 했을 겁니다.

그러나 롯은 그 지역의 유지입니다. 성문 곁에서 사람들에 삶에 간섭하는 자리를 저녁까지 지키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재물도 자기가 가진 시간도 천사 일행에게 쏟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각각 두 사람이 베푼 그 음식 상을 마주한 천사 일행은 아브라함을 찾은 하나님의 일행도 그들이 먹으니라!

그리고 롯을 찾은 하나님의 일행도 그들이 먹으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표현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이야기죠!

아브라함이 진설한 그 식탁은 열납하시는 것이고 롯이 준비한 그 형식적인 식탁은 먹기는 먹지만 너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사랑할 때 사랑은 뭘로 나타납니까? 시간과 물질입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에게 가는 물질이 아깝다면 그것도 사랑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시간과 물질이 흘러가게 되어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그에 반해 롯은 자기 시간 다 쓰고, 짜투리 시간을 지금 인심 쓰듯이 줍니다.

자기 귀한 것은 자기가 쓰기 위해서 다 두고 심지어 누룩도 아끼고 그저 자기에게 별 필요 없는 것을 지금 적선하듯이 주고 있는 겁니다.

롯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럴수있냐고?

그러나 우리가 그렇다는 것이니다. 한주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시간이 168시간입니다.

우리는 얼마를 하나님께 드립니까?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물질은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입니까? 하나님께 역효과를 내는 예배는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