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눔날짜 2018-09-08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 26: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창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이삭의 모든 우물을 메웠습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방에서 들어온 이삭이 누린 백배의 수확이 그들에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은 시기와 질투는 물리적 압력으로 이어 집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랄 왕은 그 땅에서 나갈 것을 명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삭이 전에 겪었던 흉년보다 어쩌면 휠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부자로 지내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삭은 분노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겪게 하실 거면 백배의 복을 주지나 말지, 거부가 되었는데 갑자기 모든 걸 두고 떠나야 하다니, 이게 무슨 복입니까? 무슨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26장은 이삭 인생의 축약이요 아브라함이 걸었던 생의 축약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훈련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상황을 통해 가르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부자이되 나그네라는 겁니다. 거부여도 나그네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도 동일하게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집니다. 그랄에서 풍족함을 얻었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크게 이루었지만 하루아침에 다 놓고 떠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복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하여금 인생의 본질이 나그네라는 것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무엇을 이루었든지 우리도 다 나그네입니다. 부자여도 나그네 이고 어렵게 살아도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는 곳은 하나님 나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일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동일하게 일하시고 계심을 기억하는 한날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