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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 데오”

정지훈 2017.03.31 07:49 조회 수 : 29

나눔날짜 2017-03-31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맡겨진 자리가 있습니다. 가정 가운데 혹은 직장 속에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지 말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마 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빌라도는 유대지역을 관장하는 총독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죄인들을 재판하는 자리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무고죄로 잡혀온 예수님을 재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빌라도는 이미 심문을 통해 예수님이 죄가 없으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판결을 위해 예수님을 재판석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자신은 재판석에 앉았더라 하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독관저에는 재판석이 높은 단위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 재판석에 빌라도가 앉았다는 말입니다. 그 자리는 재판을 관장하는 빌라도 총독의 자리였습니다.

 

빌라도의 착석여부에 관계없이 그것은 빌라도의 자리였습니다. 빌라도가 서있을 때에도 그는 실은 재판석에 앉아 있는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빌라도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앉는다라는 여러 동사가 있는데 의도적으로 게티아조 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자동사인 동시에 타동사인 동사입니다. 자동사로 해석하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가 되지만, 타동사로 보면 빌라도 자신이 재판을 받기 위해서 자신을 재판석에 앉혔다는 의미가 됩니다.

 

빌라도는 최후 선고를 내리기 위해서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리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어떤 선고이든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석에 앉아 있는 분은 예수님 즉성자 하나님 이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겉으로 보면 지금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 하기위해 재판석에 앉아 있지만 실은 상황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에 대해서 얼마나 성실하게 또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주님께 재판을 받기위해서 자기 자신을 앉혀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게티아조라는 동사를 사용함으로 그날 정작 재판을 받았던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빌라도 자신임을 들어 냅니다.

그가 그때 그 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지 않겠습니까?

 

우리 각자도 앉아 있는 모양과 형태는 다 틀린다 할지라도 모든 자리가 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든 그것은 실은 내가 내 자신을 주님 앞에 앉혀 둔 것을 의미 한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도 곧 주님앞에 선 재판정이란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 갑시다.

“코람 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