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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16-12-24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 중 마지막 인물은 라합입니다. 앞선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세에 비한다면 그녀가 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실 라합의 삶은 자랑할 것 없는 삶이고 자기 결정권 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볼 때는 용서받을 수 없는 더러운 죄인, 게다가 스스로는 도저히 자신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처절한 삶입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소문이 들립니다. 얼마 후 정탐꾼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소망을 하나님께 걸어버립니다.

그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 창문에 붉은 줄을 걸 것을 명합니다. 그러면 성이 멸망할 때에 라합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자신의 삶은 매일 죄 가운데 반복되고, 변한건 하나 없는데 단지 줄하나 매어 다는 것으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붉은 줄을 매답니다. 줄을 매단 이후에도 어떤 방법으로 성이 멸망할지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지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결단을 하는 것처럼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아마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비웃었을 겁니다. 줄을 단다고 생명을 얻을 것 같으냐? 비아냥 거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 구원의 붉은 줄이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라합의 결단과 믿음도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에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뿐입니다. 성이 무너져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할 지라도 라합은 붉은 줄이 매달린 그 집을 떠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라합의 믿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 모습, 내 마음, 내 처지가 어떻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붉은 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전히 라합의 창문 밖은 하나도 변한게 없습니다. 오히려 붉은 줄은 라합의 죄를 더욱 들어 내는 수치의 상징이 되어 버립니다.

붉은 줄 때문에 갑자기 평안이 찾아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도록 행복이 밀려오거나 도시 안에 가득한 죽음으로부터의 불안과 공포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약속의 줄에 걸었던 한 가지 희망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절망의 인생을 유일하게 하늘과 연결시켜 주던 그 창문에 매단 붉은 줄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소망입니다.

왜 라합을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제일 마지막에 기록했겠습니까?

 

우리는 믿음대로 살아보려고 최고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하루 하루 걸어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책감 사로잡혀 있고 순간순간 삶 가운데 다가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떨기도 합니다.

세상이 볼 때에는 믿음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한 우리가 가진 믿음이 연약하고 변덕스러운 결단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믿음 같습니다.

은혜를 받을때는 뜨거워졌다가 이내 의심과 절망으로 시험과 혼란에 빠지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은 죄 가운데 멸망하지만 그 생명의 약속을 받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꼭 붙들어 주시리라는 그 약속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그 작심삼일의 결단 위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