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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20-12-18 

창 47: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겉으로 보면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한탄하는 자기연민 넋두리 같습니다. 본문을 그렇게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더라면 저런 험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 해석합니다.

 

자기 꾀로 살았기에 인생이 저렇게 험했다.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한탄하며 고백하는 말로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장을 보면 그가 가나안을 떠나기 전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당신이 온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인 애굽”의 역사의 도구로 “너”를 들어 사용함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이 야곱 너를 통해 성취하신다고 합니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 가라, 내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다. 내가 너와 동행 할 것이다. 너는 다시 이 땅으로 돌아 오게 될 것이다” 야곱은 원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출발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그 사명을 맡기시면서 그에게 “너는 오랜 시간 동안 네 계산으로 살아온 자 아니냐! 너는 내 말도 안 듣고 네 원대로 살았으니 너는 험악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는 역사적인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게 해 주셨는데, 자신을 “나그네”요 “험악한 세월”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바로 앞에 기가 죽어서? 아닙니다. 어느 때보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나그네”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는 말은 넋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보아야 합니다. 후회 많고 고통스런 나날을 산 패배자가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진행시키는 막을 여는 소명을 받고 자신이 지금 애굽에 왔다는 것을 말하는 하나의 서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함축해서 말하는 겁니다. 자신의 삶에 일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깨닫고 나그네로 험악한 세월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 거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이유를 밝히십니다. 성전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다윗이 스스로 고백하기로 자신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려 성전을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고백은 다윗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통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개입니다. 단순히 피를 많이 흘려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던 자신의 죄를 회개 하는 것입니다.

 

죄로 치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지 않을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언제든 바른 길로 인도 하십니다. 그리고 승리케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걸어가는 자들이 우리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온전히 고백하는 복된 날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