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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20-08-15 

창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창42: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만큼 어려운 명령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깁니다.

 

요셉만큼 용서가 어려운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아니 사랑은 고사하고 긴 세월 몸서리치게 끔찍한 기억으로 자리했을 그 얼굴들을 대면하는 것은 고통이었을 겁니다.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이 아니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가득한데, 그들을 사랑하라니요!

 

명령으로 받았다면 결코 사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머리로만 알았다면 결코 순 종 할수없었을 겁니다. 요셉은 광야수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그런 자신임에도 무한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회개가 그 삶에 열매 맺어진 것입니다.

 

요셉은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사랑을 전하는 자로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형들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3일간 감옥에서 생각한 형들이 드디어 자신의 죄를 자복합니다. 그러나 자복한 것은 완전한 해결이 아닙니다. 자복만 했을 뿐 그 행위로부터 돌아 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복과 회개를 구분합니다. 자복(회개의 시작 선언)이라고 하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고 회개(돌이키다)는 행동으로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복이 회개의 시작이요 선언일 수 있지만 자복은 회개가 아닙니다. 울고 죄를 고백하는 것을 회개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삶이 참 회개의 삶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내가 요구됩니다.

 

먼저 우리 평생에 부어주신 그 은혜를 깊이 깨닫길 원합니다. 사랑 받을 그 어떤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삶에도 회개의 열매가 맺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도 맡겨진 사람들을 바로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