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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20-06-02 

창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광야 수업을 통해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자 동시에 찾아온 훈련이 있습니다. 유혹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주를 믿는 모든 이에게 같은 여정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임을 깨닫고 이제 진리의 말씀대로 섬기려 할 때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런 유혹이 찾아옵니다.

 

물론 그것은 성적 유혹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을 부추기는 모든 유혹입니다. 요셉이 밉상 이었을 때는 사람들이 거절 했지만 섬기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찾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기뻐하고 찾을 때 실은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주변의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요청을 해옵니다.

 

우리를 위하는 것 같고, 죄는 아닌 듯 한데 하나님과는 무관한 길로 우리를 끌고 가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무서운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길을 가는 것이 인생에게 가장 큰 일입니다.

 

사단은 굉장히 치밀합니다. 이런 유혹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면 눈치를 채고 거절 할 수 있는데, 이미 그들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 되고서 부탁이 들어오면 그때는 참 쉽지 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본문이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눈짓 하다가” 본문의 유혹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다가”(과거 반복형) 여인이 앞에서도 계속해서 했단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웃음과 친절, 그리고 대화가 있었다는 겁니다. 눈짓 하다가!

평상시에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받아 주었을 것입니다. 상대의 정확한 의중을 모른 체 나의 경건만을 위해 상대를 의심하거나 비하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노골적으로 그 마음을 들어내며 동침할 것을 요구하자 그 때는 “노”하는 겁니다.

 

그리도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마지막 선입니다. 마지막 선을 지키는 것이 신앙입니다.

 

창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의 고백을 읽고 있노라면 아담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니 마음대로 모든 것을 먹고 즐겨라, 그러나 이 선악과는 먹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너가 지켜야할 마지막 선이다”

 

에덴 동산에 모든 것을 누리도록 주시면서 하나의 명령을 하십니다. 피조물이 지켜야할 마지막 선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유일한 구분 점이 됩니다.

 

신앙이 이것입니다. 신앙은 첨에는 다 비슷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뚜렷이 구분이 갑니다. 모든 것을 우리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마지막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명확한 마지막 선이 있기를 원합니다. 말만 거창하게 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각자의 삶에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을 잘 생각해 보는 하루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