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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19-04-19 

창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절대적인 고독 속에 홀로 남겨졌지만 야곱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도의 공포속에 놓인 야곱에게 또 먼저 찾아 가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드러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씨름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크”는 온 몸이 땅에 굴러 먼지에 둘러 쌓일 정도로 서로 붙잡고 격렬하게 싸우다입니다. 말이 싸우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맞지 않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의 사자가 다짜고짜 야곱을 치는 것입니까? 도무지 야곱의 자아가 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번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체험했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음이지 아주 참음이 아닙니다. 인생에게 아무리 선으로 일하셔도 여전히 자기 중심으로 살 때 그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도록 일하십니다.

 

말씀이 아닌 직접 손을 대시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격렬하고 심각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치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창 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이 그 고집을 꺾지 않자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쳐 환도뼈를 부러트리십니다. 사람들은 야곱이 잠시 다리를 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야곱은 평생 절름발이로 살게 됩니다. 야곱은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그를 치신 겁니다. 얍복 사건을 해석할 때 야곱의 기도에 초점을 맞추니까 실제로 야곱에게 일어난 일은 보지도 못합니다.

야곱의 기도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치심입니다.

 

하나님이 치시자 야곱이 기도한 것입니다. 야곱은 오늘을 사는 우리와 참 많이 비슷합니다.

수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그의 기다림과 용서 기회를 누리며 살아 왔지만 야곱처럼 하나님과 교제가운데로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도 살려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을 원할 뿐 그분과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것은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은 포기치 않으십니다. 야곱의 자아를 부셔서라도 그와 대면하시고야 마는 하나님이십니다.

 

긴 은혜의 날이 지속될 때 하나님과 교제 하기위해 애를 쓰는 것이 인생에 지혜입니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의 크리챤이 되어가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