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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17-09-15 

창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창42: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사랑하며 살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사실 사랑하며 사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지 모릅니다.

 

하물며 본문에 요셉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 긴 세월 몸서리치게 끔찍한 기억으로 자리했을 그 얼굴들을 대면하는 것만으로 다시 고통이었을 겁니다.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이 아니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가득한데, 그들을 사랑이라니요!

 

그런데 우리는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요셉만큼 도저히 용서가 불가한 이유가 뚜렷한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신들 야단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사랑으로 그 인생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입은 자는 받은 사랑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배운 대로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배운 사랑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인내입니다. 그래서 요셉도 긴 시간을 들여 인내하며 지혜롭게 사랑합니다.

 

3일간 감옥 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형들이 드디어 자신의 죄를 자복합니다. 그러나 자복한 것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자복만 했을 뿐 그 행위로부터 돌아 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복과 회개를 구분합니다. 자복(회개의 시작 선언)이라고 하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고 회개(돌이키다)는 행동으로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복이 회개의 시작이오 선언일 수 있지만 자복은 회개가 아닙니다. 울고 죄를 고백하는 것을 회개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삶이 참 회개의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내가 요구됩니다.

 

지혜와 인내로 사랑하기를 애쓰는 한날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