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날짜 | 2017-01-16 |
|---|
창 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랄로 내려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문제는 아브라함의 중심이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정 사항을 통보 하며 걸어 가는 그 중심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정복한 후에 다음 성인 아이성을 보며 이 정도는 충분이 스스로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고 곧 바로 일을 진행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불신앙에 제동을 거시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의 문제나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하나님께 기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의사 결정에 결정권자가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랄로 내려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것이 문제 입니다.
단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며 살지만 오랜 세월 하나님을 수단 삼기만 하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는 도무지 하나님을 주인 삼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려 하지도 않고 그 하나님의 생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소위 언터쳐블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도 손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의견이 이미 하나님의 뜻이 되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좌지 우지 하며 살아 갑니다.
결국 그랄은 상당한 신앙의 경지를 거친 뒤에 오는 영적 교만함이 근본적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진행해 가십니까?
혹여 곁에 있는 가족들 조차 건들 수 없는 언터쳐블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댓글 0
| 번호 | 제목 | 날짜 |
|---|---|---|
| 240 | 사사기 2장12절( 여호와를 버리다 ) | 2017.02.11 |
| 239 | 사도행전 20장 22-25절( 성령이 보여주시는 환상 ) | 2017.02.10 |
| 238 | 여호수아 16장 10절( 약간의 경제적 이득과 맞바꾼 영적 손실 ) | 2017.02.09 |
| 237 | 한결같이 왕따로 사신 하나님 | 2017.02.07 |
| 236 | 여호수아 15장18-19절( 악사의 선택 ) | 2017.02.07 |
| 235 | 여호수아 15장13ㅡ14절 신앙의 전수 | 2017.02.04 |
| 234 | 창세기 3장1절( 부정어가 삶에 미치는 영향 ) | 2017.02.02 |
| 233 | 여호수아 14장14-15절( 갈렙의 의미 ) | 2017.02.02 |
| 232 | 창세기2장 16-17절( 선악과 ) | 2017.02.01 |
| 231 | 창세기 2장 15절(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 | 2017.01.31 |
| 230 | 여호수아 14장 12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 2017.01.28 |
| 229 | 여호수아 22장23-25절( 단을 쌓은 목적 ) | 2017.01.27 |
| 228 | 여호수아 14장3절( 선택의 기준 ) | 2017.01.26 |
| 227 | 여호수아 14장2절( 제비뽑기 ) | 2017.01.24 |
| 226 | 여호수아 14장 3절( 요단 동편의 사람들 ) | 2017.01.24 |
| 225 | 창세기 2장 11-12절( 에덴의 회복 ) | 2017.01.21 |
| 224 | 창세기 2장 10-14절( 생명을 생명답게 ) | 2017.01.20 |
| 223 | 창세기 2장 8절( 울타리를 치다 ) | 2017.01.19 |
| 222 | 사무엘하 11장 2절( 영적 교만의 또다른 모습 ) | 2017.01.18 |
| » | 창세기 20장 1절( 언터쳐블 ) | 2017.01.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