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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20-02-22 

야곱이 돌 기둥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이제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거기가 하나님의 벧엘임을 고백하고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고백은 이제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사건에서 드디어 그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 집니다.

 

창35:16 <라헬이 산고로 죽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창35: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창35: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이 지금 난산을 하며 죽어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짓습니다. 베노니의 뜻은 슬픔의 아들입니다.

 

지금 아기가 태어나는데 자신은 죽어 갑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젖도 못 먹는 아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 슬픈 현실을 보면서, 이 자식은 정말 베노니라는 겁니다.

 

그순간 야곱이 뭐라고 합니까? 아니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베냐민이라는 겁니다. “아니다. 슬픔의 아들이 아니다. 베냐민(오른 손의 아들)이다”. 누구의 오른 손 입니까?

 

하나님의 오른 손이 이 아이를 붙들고 있다는 겁니다. 야곱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왜 슬픔의 자식이냐? 엄마는 죽어도 인간은 곁에 없어도,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의 손으로 잡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은 베냐민이다. 야곱은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며 그분은 한결 같은 사랑과 은혜로 우리 인생을 돌보심을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놀랍게 변한 야곱의 모습은 누구 덕입니까?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니가 늘 나를 등쳤지만!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또 내가 져주시겠다는 그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야곱이 이 믿음을 소유하기에 이릅니다.

 

우리도 신앙 고백은 그럴듯하게 하며 살아 왔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믿음이 베냐민이라는 고백에 이르지 못했어도 절망하지 말 이유가 있습니다. 야곱 같은 인생도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이와 같은 고백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성도님들, 우리가 그의 말씀 가운데 몸부림치며 그분께 도움을 구하며 사는 한 하나님은 그의 강한 팔로 우리를 그리고 우리 가족들을 붙들어 생명의 길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