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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20-01-21 

룻3: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매순간 말씀 안에서 걸음을 걷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행보에 발을 맞춘다고 상대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상대를 위로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더불어 “아침까지 누워 있으라” 여인을 홀로 밤에 돌려 보내지도 않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져주는 배려심이 있는 보아스입니다.

 

룻 3:14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룻 3: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룻의 입장을 생각해서 다음날 새벽미명에 그녀를 돌려보냅니다. 돌려 보내되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자기 아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해서 그녀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양식을 주되 체면치례 정도로 주지 않습니다. 룻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최대한의 많은 보리를 퍼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먼저 선을 베풉니다 그리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습니다.

 

보아스의 처신을 보면 참으로 여유가 넘칩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사로 잡혀 초조해 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간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그것이 들어 납니다.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멀어지면 구태여 사랑과 친절을 계속 해서 베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아스는 지금 이 일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될지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씀 대로 걸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후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자비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가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값없이 받은 자비를 나누는 법칙도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같은 방법으로 나누는 삶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말씀 안에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후히 갚아 주신다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모두가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 혹은 이익이 있는 일에 자비를 베풀 때 할 수만 있다면 돌아 오지 않을 곳으로,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곳으로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기를 애써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