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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날짜 2019-12-14 

룻2: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룻2: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들이 베들레헴에서 살았던 이전에도 그로부터 은혜를 입은 것을 기억합니다. 그를 위해 복을 빌어 줍니다.

 

본문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라고 밝힙니다.

"기업 무를 자" 히브리어“가알”의 뜻은 무르다, 값을 치르고 물건을 되찾다입니다.

친족이 가난해서 토지를 팔거나 자신이 종으로 팔린 경우, 그 값을 대신 치르고 구속하는 것입니다.

고엘제도는 공동체성을 강조합니다.

신25장에서는 아들 없이 죽은 형이나 동생의 아내에게 그 형제들이 장가들어 그 사람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 합니다. 계대결혼, 수혼법으로도 불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이 고엘 제도는 온전하게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최소한 여기까지는 사랑 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사람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겁니다.

최소한 그것 까지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은 율법의 목적은 율법을 넘어 더 큰 사랑으로 나아 가게 하려는 것이 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아니 율법을 넘어 사람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을 정죄 했을까요?

오히려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고 십자가에 못 밖아 버립니다.

 

율법을 지킨답시고 예수님을 못 밖은 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기에 주신 율법도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떨어지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율법주의로 흘러갑니다.

이때가 되면 율법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사랑을 맛보고 그 기쁨을 나누고 베풀며 이 길을 함께 가는 것이 기독교 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길 원합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말씀을 바르게 순종해 가는 성숙한 성도되길 축원합니다.